참선수행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간화선(看話禪)이란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본래 성품을 바로 보는 참선법이다. 본래 성품을 보면 깨닫는 것이다. 화두를 타파하여 깨닫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견성성불이란,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간화선을' 화두를 참구하여 깨치는 수행법'이라 하여 일명 화두선(話頭禪)이라고도 한다. 간화선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인도와 중국을 거치면서 자기 성품을 깨닫는 여러 참선법 가운데 가장 발달된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다. .

간화선의 원류가 되는 조사선(祖師禪)은 4세기경 달마 대사가 동쪽으로 건너와 전한 것에서 유래한다. 7세기경 당나라 시대에 6조가 된 조계 혜능(638~713) 선사가 돈오선법을 제창하면서 선종의 실질적인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 이후 당, 송 나라 시대를 거치며 수 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하였다.

12세기 중반에 이르면 대혜 종고(1089~1163) 선사가 조사와 수행자 사이의 문답을 정형화한 화두를 일상 생활 가운데 참구하는 간화선을 제창하였다. 대혜 선사가 제시한 간화선은 조사선의 핵심을 가장 잘 간직한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는 생활 수행법이다.

간화선이 뛰어난 점은 깨달은 선지식이 깨달은 자리를 바로 보라고 제시한 화두를 타파하여 그 자리에서 견성 성불하기 때문이다.
화두란 무엇인가?

화두(話頭)란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이 하신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긴 말이다. 이 말길과 생각의 길로는 알 수 없는 화두를 알기 위해 의심하여 온 마음이 화두와 하나가 되어 마침내 그 화두를 타파하면 견성 성불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어떠한가?

화두를 타파하면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 또 하늘에 백 천개의 해가 비치는 것과 같다.

깨달은 세계는 허공과 같이 무한히 넓어 한정이 없다. 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평등해서 우열이 없고, 귀천ㆍ친소ㆍ시비가 없다.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깨달으면 자주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한 없이 자비로우며,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자유자재한 대자유인이 된다.

이 역동적인 현상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스스로 물을 마셔보아야 차고 더운 것을 아는 이치와도 같다.
초심자가 간화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발심(發心)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간화선 수행을 할 수 있다. 정견을 갖추고 진정한 발심이 되어 있고 눈 밝은 스승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기초 수행 없이 바로 간화선 수행을 해도 된다.

그러나 부처님 교법(敎法)에 대한 정견과 발심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간화선을 하려면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초심자들은 간화선 수행을 하기 전에 교법을 바르게 이해하여 확고한 신심(信心)을 세우고 수행을 통하여 기필코 깨닫고야 말겠다는 발심을 해야 한다.
참선수행을 왜 해야 하는가?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인류 이래로 생로병사의 고통과 행복은 반복되어 왔고, 이에 대한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발생하고 또 소멸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자기 마음을 깨치면, 즉 견성성불하면 생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행복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도"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요, 깨달음으로 만세의 표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칠 수 있는가?

선종(禪宗)에서는 우리는 이미 본래 부처라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인데 왜 깨친다고 말하는가?

우리는 본래 부처인데, 번뇌망상에 가려서 자기의 본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번뇌망상을 제거하여 본 마음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고, 번뇌망상을 없애 가는 것이 불교 수행입니다.

불교 수행법 중에 참선! 특히 간화선(看話禪)수행은 화두로 이 번뇌망상을 제거해 나가는 탁월한 수행법입니다.

특히, 간화선은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자기 계발이 필요한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선(禪)이란, 화두(話頭)란, 번뇌망상에 허덕이며 사는 착각세계를 깨는 검(劍)과 같은 것입니다.

현대인은 한시도 생각의 흐름이 지속되지 못하고, 옳고 그름, 있다 없다, 등 시비분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시비 분별심이 있는 한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고통, 화, 욕심등의 진절머리나는 삶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화두를 참구하여 확철대오하면 번뇌망상의 불을 끄게 되어 마치 꿈을 깬 것같이 환하고 밝은 지혜광명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열리는 것입니다. !!!
-- 조계종 포교원에서 발췌함 --
安居(안거)란 무엇인가?

안거는 산스크리트의 "바르샤(vassa)" 를 번역한 말인데, 우기(雨期)를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자인 비구를 운수납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낡은 천을 모아서 누덕누덕 기워 만든 분소의를 입고, 구름처럼 물처럼 흘러 다니며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합니다. 그러나 머문 바 없이 만행하며 수행하는 데는 여러가지 곤란을 겪게 되고, 특히 불살생을 절대 계율로 삼는 수행자에게 인도에서는 여름의 비가 많은 우기가 되면 돌아다니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대지에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름 우기 석 달동안 만행을 중단하고 한 장소에 머물러 수행과 정진에 힘쓰는 기간을 별도로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안거(安居)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무더운 여름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에도 안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우리나라는 하안거와 동안거로 나누어 제도화하였습니다.

* 夏安居(하안거) : 음력 4월 15일 ~ 7월 15일(우란분절, 백중)

* 冬安居(동안거) : 음력 10월 15일~ 이듬해 1월 15일(정월 대보름)

안거는 약 90일이며, 이 기간은 수행에만 전념하는 용맹정진 기간입니다.
결제란 무엇인가?

결제란? 수행의 필요상 일정한 지역을 정해 행동에 제한을 가하는 일. 즉 일정한 공간을 결(結)하는 것을 말합니다. 밀교(密敎)에서는 일정한 지역을 구획하여 그곳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수행의 도량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제가 의미하는 것은 90일 안거기간 동안 빈틈없이 단단히 법을 묶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제는 전통적으로 하안거와 동안거 3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최소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선방에서 집중적으로 좌선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결제기간은 묵언정진을 통하여 더욱 강렬하게 수행을 깊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수행에 정진하도록 도와줍니다.
결제규칙 및 청규




연등선원 결제 규칙
연등선원 수행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불자들은 사찰 예법과 결제 규칙을 봉지하고 각자가 지니고 있는 알음알이가 존귀하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결제 시작부터 끝까지 하심과 묵언을 원칙으로 하며, 잡답을 해서는 안됩니다.
매일 결제 일과표를 따라 수행해야 합니다.
정진 중에는 선방을 드나들지 않으며, 음주, 흡연 후에는 선방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선방에 들어오고 나가는 법
선방을 들어오고 나갈 때는 합장 반배를 합니다.
복장은 회색법복을 원칙으로 하며, 각자 준비합니다.(필요한 경우 절에서 대여 가능합니다)
특히, 청신녀는 짙은 화장은 삼가하며, 신발은 항상 가지런히 놓습니다.
선원 내에서는 특히, 선방에서는 절대 묵언합니다.
절 안팎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나면 합장 반배로서 하심과 공경, 화합을 표합니다.
좌복 끝선을 항상 잘 맟추고 방선한 후에는 개인이 사용했던 무릎 덮개등은 개인 사물함에 정돈하여
오직 좌복과 뒷 좌복만 남아있도록 합니다.
- 개인의 자리에 집착하거나 좌차에 대하여 불평하는 행위는 수행자답지 못합니다.

좌복에 앉을 때
불필요한 행동이나 소리를 내어 주변 도반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합니다.
기침을 할 때는 수건이나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합니다.
좌차는 먼저 들어오는 이가 임으로 정할 수 있으며, 좌복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습니다.
정진 중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자세를 마음대로 흩트리지 않습니다.
정진중에는 어떠한 사유로든 자리를 이탈해서는 안 됩니다.
핸드폰이나 기타 불필요한 물건을 소지하고 선방에 들어 가지 않습니다.
정진 중에 시계줄을 풀어 놓거나, 기타 개인물품을 옆에 두는 행위는 삼갑니다.

기타 소칙
결제 기간 중에 개인적인 상비약이나 약품은 개인이 준비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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